본 글은 종양학 전문 소식지 Oncology Times에 2018년 9월 21일에 기고된 칼럼을 번역한 것입니다. 삽입된 이미지는 모두 역자가 추가한 것입니다.
의식, 포드, 그리고 문어
On Consciousness, an Old Black Ford & an Octopus
최근 아내와 나는 거리를 걷다 우연히 오래된 검은색 포드 자동차를 보게 되었다. 즉시 나는 그 차가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이 소유했던 1950년대 초반의 모델임을 알아보았다. 일순간 그 차가 아직 신형이던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나의 의식에 남아있는 첫 기억은 우리 집 포드 자동차의 뒷자석에서 깨어난 것이다. 내 몸이 작아서였을지도 모르지만, 차의 천장이 높았던 것도 기억한다. 당시의 차에는 안전벨트가 없었고, 유아용 카시트도 없었으므로 뒷자리에 누워 잠들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앞좌석에서 이야기하던 통에 잠에서 일어났고, 곧 우리 가족은 차에서 내렸다. 잠에서 깨기 전의 사건들은 말 그대로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 당시에도, 그 순간 이전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신의 의식 속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 나는 아마 만 3세 쯤 되었으리라. 연구에 따르면 첫 기억은 만 1~4세에 만들어지며, 만 3세가 대부분이므로 나는 아주 평범한 축에 속하는 셈이다. 전문 의식 연구자들은 “최초의 의식적 기억”이 “의식이 생겨난 증거”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fMRI 연구에 따르면 생후 2개월의 신생아에서도 의식의 증거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검정색 포드 중형차의 뒷좌석에서 깨어나던 그 순간이 바로 나의 의식이,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나 자신에 대한 감각이 처음으로 눈뜬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의식을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나는 위키피디아의 설명을 좋아한다. “깨어있음, 즉 외부의 존재와 내적 상태에 대하여 알아차리는 상태 혹은 특질.” 의식은 엄청나게 논쟁의 여지가 많은 분야이며, 철학자, 생물학자, 신경학자, 물리학자(양자 이론… 말도 마시라) 뿐만 아니라 누구든 한번쯤 고민해봄직한 주제이다.
철학자들이야말로 의식에 대해 제일 오랫동안 생각해 왔고, 가장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해온 이들일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유명한 르네 데카르트는 의식의 존재를 자신의 견고한 이론적 토대로 삼아 여러 철학 이론들을 세웠다.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현대 철학자 대니얼 데닛 (Daniel Dennett)은 “데카르트 극장”으로서의 의식을 부정하며, 의식을 고등 유기체의 복잡한 신경회로의 부산물 즉 부수현상(epiphenomenon)으로 치부한다.
이 이론은 시각에 관한 연구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실험자에게 특정 이미지를 아주 짧은 시간 (50 ms 이하) 동안 보여주면 시각피질에서는 fMRI 활성이 나타나지만, 다른 곳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더 긴 시간 동안 이미지를 노출시켜주면 시각피질뿐만 아니라 뇌의 여러 영역이 활성화되는데, 이는 그 이미지가 전역 작업공간에 의해 공유되기 때문으로, 그리하여 뇌의 다른 영역들도 감각 정보에 대한 접근권한을 얻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너무 간소화했지만) 이것이 바로 의식의 기초이다. 누구든 의식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원한다면 스타니슬라스 데하네(Stanislas Dehaene)의 책들을 읽어보길 권한다. 경쟁관계에 있는 이론인 정보 통합 이론(integrated information theory) 역시 많은 뇌과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아버지는 전립선암을 앓고 있었고, 거세와 화학치료에도 불구하고 암은 극심한 고통을 일으키며 뼈로 전이되었다. 질병은 그에게서 서서히 자립심과 기력, 희망을 앗아갔다. 나는 사망 2주 전에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찾았고, 이내 나의 환자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돌아와야 했다. 슬픈 일이었다. 남자 형제가 내게 아버지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2주 남았노라고 말했다. 그 이상은 바랄 수 없었다. 그걸 너무 잘 알아서 탈이었다.
아버지의 직접적 사인은 폐색전증이었다. 약 1년 전에 왼쪽 다리에 심부 정맥 혈전증을 겪은 터였다. 혈전은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플로리다주 보니타 스프링스까지 긴 드라이브를 하면서 일어났다. 아버지는 운전할 때 그토록 참을성이 없어서 최대한 빨리 이동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단 1초도 불필요하게 지체하는 법이 없었고, 절대 차에서 내려 바람을 쏘이지도 않았다. 그 결과는 10개월 간의 혈액 응고 방지제 복용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인을 들었을 때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당시 나는 인디애나주에 있었고, 부모님은 위스콘신주에 있었다. 메시지를 받은 화요일, 나는 외래진료소에서 일하던 중이었다. 나는 동료에게 양해를 구한 뒤 차를 타고 곧장 매디슨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그의 아들보다 훨씬 더 종교적인 사람이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삶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했다. 죽음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서둘러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사망 당일, 아버지는 담당 의사에게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임상시험이 있는지 물었다. 1990년대 후반은 혈관신생 억제요법이 대세를 이루던 때였고, 당시 어떤 노벨상 수상자가 2년 내 암을 치료할 수 있을거라 단언했던 약인 Endostatin이 위스콘신 대학에서 임상 1상 시험을 받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오래 살아서 버티기만 하면, 반드시 병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아버지는 여러 번 내게 확언하듯 말했다.
나는 그것이 낙관적 편견임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병증은 어떤 임상시험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고, 나와 그의 담당의사는 죽기 전 몇 개월 전에 그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그는 싸웠고, 희망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병원에 다다랐을 때, 아버지는 숨이 모자라 과호흡 증세를 보였고, 명백히 죽어가고 있었다. 담당의는 친절하게도 산소와 모르핀 수치를 올려 주었다. 그 전 몇 주 간 아버지는 모르핀의 환각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죽음이 임박한 때에 그는 깨어 있었고, 죽음의 순간까지도 의식이 있었다.
사망 전 마지막 몇 분 동안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눈을 번쩍 뜬 것이다. 시선은 병실 이곳 저곳을 헤맸고, 어느 곳에도 2초 이상 머물지 않았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때때로 그 시선은 내 얼굴에 머물다가, 곧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나는 그가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질 수 없는 무언가, 그곳에 없는 무언가를…
그것은 의식의 마지막 명멸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죽어가는 뇌의 무작위적인 전기적 활동이었을까?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 곧 사라졌고, 그의 의식은 영영 사라졌다.
우리는 사람이 죽을 때 영혼이 몸을 떠난다고 말하곤 한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과학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지만. 하지만 의식은, 우리가 이해하는 한, 광범위하게 분산된 신경망을 통한 대규모 병렬적 정보처리이고, 완전히 물리적인 전기화학적 과정이지만, 매우 연약하고,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전원을 내리면 신호는 사라지고, 의식도 함께 소멸되는 것이다.
교세포 종양은 의식이 있을까? 매우 이상한 생각임에 틀림없다. 뇌종양도 의식적 과정에 참여하여, 앞서 언급한 전역 작업공간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마치 호러물에 나올 법한 이야기이다. 뇌로의 암전이는 의식적 기능에 늘 영향을 미친다. 나의 삼촌 존이 흡연으로 인한 폐암에 걸린 후 암세포가 뇌로 전이된 순간, 그 차분하던 침례교도는 음담패설을 수시로 뱉어대는 교양 없는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전두엽의 손상으로 인한 억제 기능의 상실로 인한 것이다. 그 폐암 세포들에 악령이 씌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유방암 전문의로서, 나는 가끔 유방에서 관상 선암종이 아주 잘 분화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곤 한다. 암세포들이 젖샘의 역할을 똑같이 잘 수행해낸다면? 마찬가지로 잘 분화된 뇌종양도 유사한 기능을 지녀서 의식을 일으키는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의학논문은 없다. 솔직히 나는 그것이 차라리 다행스럽다. 얼마나 징그러운가. 우리의 뇌가 해로운 무언가에 의해 장악당하여 악행을 저질러버린다면…
1966년 텍사스 타워에서는 미국 최초의 (당시에는 이런 일이 드물었다) 무차별 총기 난사가 일어나 17명이 죽고 31명이 부상을 당했다. 범인인 찰스 휘트먼은 그 전부터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쓴 유서에 의하면, 휘트먼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괴상하고 비이성적인 생각들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가 무언가 생산적인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정신적 노력이 필요했다.
유서에서 휘트먼은 자신의 사체를 부검할 것을 요청했고, 그 결과 호두 열매 크기의 암덩어리(다형성아교모세포종)가 발견되었다. 그 암덩어리가 대학살의 원인 중 하나였는지에 대한 신경학자들의 논쟁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뭐라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나는 뇌의 암세포가 스스로 의식을 지니고 휘트먼의 의식을 이리저리 뒤흔들어 놓았다고는 보지 않는다.
천인공노할 악행을 굳이 생리학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원인을 규명하면 통제할 수도 있을 거란 조금의 위안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의식을 장악하는 일에 능숙하지 않은가. 중독성 약물, 편집증적인 정치, 종교적 광기 등등… 그러니 암에 의한 마인드 컨트롤은 공상과학 소설의 몫으로 남겨 두자.
나는 그 낡은 검은색 포드 자동차와, 앞좌석에 앉은 부모님의 다정한 목소리만을 기억하고 싶다. 그날의 기쁘고 행복한 기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