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비유

당신은 의식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여기까지는 어렵잖게 말할 수 있다. 의식이 없는 동안 우리 육체는 힘을 잃고 축 처진다. 눈구멍 속 눈알은 제멋대로 구르고, 뇌파는 크게, 느리게, 규칙적으로 변하며, 우리는 이 문장을 읽을 수도 없게 된다.

이처럼 겉으로 보이는 의식의 징후는 꽤 명확하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의식이 만들어 내는 내면세계다. 의식의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당장 우리 눈앞에 보이는 지각적 세계, 마음속 혼잣말, 시각적 심상, 현재, 그 현재가 남긴 일시적인 단기기억, 쾌락ㆍ고통ㆍ흥분과 같은 신체적 느낌, 그 느낌의 끓어오름, 자전적 기억, 분명하고 즉각적인 의도ㆍ기대ㆍ행위, 자아나 세계에 관한 명시적인 믿음, 추상적이지만 중요한 개념들까지 모두 의식의 내용에 속한다. 과거 몇 십년간 행동주의 학파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거부했지만, 오늘날에는 그 누구도 이를 부정하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 당신과 나는 ‘읽기’라는 행위의 여러 측면 가운데 일부를 의식한다. 흰 종이와 대비되어 나타난 글자들의 모양을 의식하고, 단어들을 마음속으로 읽고 그 소리를 의식한다. 하지만 의자의 촉감과 같은 배경 감각, 중력에 대응한 몸의 미묘한 균형 잡기, 주변인들의 대화, 이 구절을 보기 위한 정교한 시선 고정 등은 자각하지 않는다. 몇 초마다 계속 ‘현재’가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 어느 친구와의 우정, 삶의 목표도 자각하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무의식적 요소들은 의식적인 요소들만큼이나 중요하다. 의식 조건과 무의식 조건 간의 비교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단어에 시각적 초점focus을 맞추어 보라. ‘초점’이라는 단어를 의식하면서 당신은 의식적으로 이 단어가 명사라고 판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왼쪽 귀 바로 위에 위치한 대뇌피질의 특수한 언어 분석기브로카 영역—역주무의식적으로 이 단어를 명사로 분류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위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동사나 형용사로 이해했다면 의미가 사뭇 달랐을 것이다.

또한 ‘초점’이라는 단어를 읽으면서 당신은 이 단어의 뜻 가운데 나머지 아홉 가지는 자각하지 않았다. 만약 다른 문장에서 다른 맥락으로 쓰였다면 곧바로 다른 의미가 마음 속에 떠올랐을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뜻들 중 일부가 수백 밀리초동안 무의식적으로 존재하고, 당신의 뇌가 그 가운데 올바른 의미를 결정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단어는 뜻이 여러 개지만, 우리는 한 번에 한 가지 뜻만을 의식할 수 있다. 이는 의식과 관련한 근본적인 ‘팩트’다.

위 예시에서 볼 수 있듯,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의식’은 “나는 책 페이지를 본다” 또는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상상했다”처럼 쉽게 서술할 수 있는 초점focal 의식이다. 올바른 조건에서, 우리는 높은 정확도로 이러한 의식적 내용들을 의식적인 것으로 보고할 수 있다. 올바른 조건이라 함은, 경험 후에 지체 없이 즉각적으로 보고하는 것, 방해하는 자극이 없는 것, 외부 관찰자가 그 보고를 검증하는 것 등을 말한다. 이 조건은 감각 지각, 기억, 주의, 상상을 연구하는 전세계 수많은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표준 조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이 내놓은 수천 수만 건의 실험 결과 역시 앞으로 이 책에서 소개될 모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중에 의식의 정의에 대한 의문이 든다면, 언제든 위 문단을 다시 읽어보라. 여러분 자신의 경험이야말로 이 책에서 말하는 ‘의식’의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낸다. 검증 가능한 공적public 보고는 과학적 증거의 핵심이지만, 지금 여기 당신의 경험 역시 그 증거에 대한 썩 괜찮은 지표로 쓰일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주관적 설명은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하며, 반대로 모든 객관적 설명은 나와 여러분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의식 그 자체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비유

플라톤의 『국가론』 7권에는 다음과 같은 은유가 등장한다.

인류를 지하 동굴에 살고 있는 존재로 상상해 보자 … 이 죄수들은 어릴 때부터 동굴 속에서 살아왔다. 목과 다리에 족쇄가 채워져 있어서 동굴에서 나갈 수도 없다. 족쇄 때문에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앞만 쳐다봐야 하는 신세다. 그들 뒤에서는 횃불이 타고 있고 … 횃불과 죄수들 사이에는 … 마치 인형극 무대의 스크린처럼 낮은 벽이 세워져 있다고 상상해 보자 … 이 벽을 따라 인부들이 인간이나 다른 생물을 조각한 석상이나 목상 등 갖가지 물건을 들고 나른다 … 이때 죄수들이 동굴 반대편에 비친 그림자 이외에 과연 무엇을 볼 수 있을까? … 분명 죄수들은 그림자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플라톤, p. 312]

플라톤의 이 유명한 동굴 은유는 그가 예상치 못한 독특한 방식으로 후대 서양 지성사와 동양 철학에 이르기까지 반향을 남겼다. 그의 사후 약 2500년이 지난 뒤, 프랜시스 크릭이라는 과학자는 이렇게 썼다.

공통된 비유법 중 하나는, 시각적 주의를 ‘스포트라이트’에 빗대는 것이다. 이 스포트라이트 안에서는 정보가 다소 특별한 방식으로 처리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주의를 기울인 물체나 사건을 더욱 정확하고 빠르게 보고 쉽게 기억할 수 있다. 이 ‘스포트라이트’ 바깥에서는 시각 정보가 더 적게, 혹은 다르게 처리되거나, 아예 처리되지 않는다. 뇌의 주의 시스템은 이 가상의 스포트라이트를 시야 내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재빠르게 이동시킨다. 마치 당신이 눈을 움직여 시선을 옮기는 것처럼 말이다. [크릭, 1993, p. 62]

플라톤의 요지는, 영원불멸한 철학적 진리에 비하여 의식적 지각이 오류를 범하기 너무도 쉬움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반면 프랜시스 크릭의 의도는 의식적 경험에 필요한 뇌 구조인 시상과 대뇌피질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횃불 그림자와 크릭의 시상 스포트라이트는 서로 어떻게 다를까? 하지만 나는 그 둘의 공통점에 마음이 쏠린다. 두 비유 모두 인간 의식을 통합적으로 개념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들은 한 가지 비유법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개인적 경험을 극장에 비유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 은유는 비교적 상세한 반면, 크릭의 스포트라이트 비유는 뇌의 해부ㆍ생리학에 근거한다는 특징이 있다. 극장 비유는 수많은 인지ㆍ뇌과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이미 발전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고대 인도의 베단타Vedanta 철학자들, 과거 서양의 시인들과 철학자들 또한 여러 시대와 장소에 걸쳐 비슷한 개념을 제시해 왔다.

극장 모형이 오늘날 다시 한 번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뇌의 작용 중 대다수가 전문화된 작은 단위의 뇌 조직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이 사실은 우리 스스로의 경험으로부터는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뇌를 직접 들여다보면 그렇다.

  1. 뇌는 1천억 개에 달하는 뉴런신경세포으로 이루어져 있다.
  2. 각 뉴런은 약 1만 개의 다른 뉴런들로부터 입력신호축삭돌기를 받아들이며, 여남은 개의 세포에 출력신호축삭 말단를 내보낸다.
  3. 뉴런들은 매우 잘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의 뉴런에서 다른 임의의 뉴런까지 최대 7단계 내에 도달할 수 있다.
  4. 뇌의 대부분은 뉴런의 소규모 집합체, 배열, 기둥, 지도, 군집, 네트워크, 기능적 루틴, 거대 연결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모두는 특정 기능에 고도로 특화되어 있다. 가령 어떤 뉴런은 시야 중 한 곳의 빨간 빛을 감지한다. 어떤 뉴런은 45도로 기울어진 대각선에 반응한다. 또 어떤 뉴런들은 얼굴을 식별하거나, 시각 정보와 소리 정보를 대응시킨다. 전문화야말로 대다수 뉴런의 지상 과제다. 그러나 이 조직들 중 대부분은 무의식적이다.

이처럼 뇌는 분산적 스타일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령부에서 자세한 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수백만 개의 전문화된 복잡한 시스템들이 각자 업무를 담당한다. 이는 우리의 몸이 세포 단위로 작동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자동차는 중앙 엔진에서 모든 추진력을 내지만, 우리 몸은 그렇지 않다. 모든 세포는 DNA 부호, 그 세포의 과거 이력, 주변 조직으로부터의 화학적 영향 등에 따라 한 가지 기능을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우리 몸의 기본적인 조직 단위는 세포다. 마찬가지로 우리 뇌 역시 분산적 스타일로 조직되어 있다.

극장 비유가 유용한 까닭은, 의식이 뇌 속 수많은 지식에 대한 접근을 가능케 한다는 수많은 실험 증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식적 경험의 유지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뇌 부위는 전체 뇌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의식 네트워크는 피질의 감각 영역과 그 주변 영역, 몇몇 피질하 구조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이 의식의 무대를 구성하면 나머지 뇌 영역들이 무의식적 관중으로서 객석을 채운다. 의식은 뇌의 선전 기관, 즉 정보의 접근ㆍ전파ㆍ교류, 전체적 협응과 제어를 위한 도구와도 같다.

아닌게아니라 정신 기능에 관한 현존하는 통합적 모형들은 예외없이 모두 극장 비유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체스, 마음 속 목소리,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회전하기, 뇌 손상 영향 연구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분야의 증거들에 기반하여 지난 40여년 간 다양한 이름의 모형들이 구축되었다.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 인간의 인지기능을 통합적으로 개념화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결과가 이 모형들이다.

그러나 그 위대한 사유의 총체와 실제 인간 경험의 본질 사이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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