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음 논문에 관한 요약 및 리뷰이다.
Grinde, Bjørn, “Did consciousness first evolve in the amniotes?”, Psychology of Consciousness: Theory, Research, and Practice, Vol 5(3), Sep 2018, 239-257
의식은 계통학적으로 언제 발생했는가?
이 질문은 동물 의식을 둘러싼 핵심 논쟁 중 하나이다.
의식의 근간인 신경계는 약 6억 년 전에 군체가 다세포생물로 진화하면서 함께 등장했다.
이 단계에서는 아주 낮은 복잡도의 반사운동 정도의 기능만 수행했으나,
신경세포의 수가 올라가면서 점차 정교한 조절이 가능해졌다.
발달된 신경세포로 (1) 더 많은 경험을 저장하고 (2) 이 정보를 이용해서 생존에 적합한 선택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의식이 만능 도구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의식 역시 특정 상황에서 행동을 돕기 위해 진화된 뇌의 기능이며,
특히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기능하는 것 같다.
심장박동이나 소화처럼 결코 의식의 통제영역에 닿지 않는 행동도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저자는 의식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 에너지 소모가 크다
- 느리다
- 한 번에 한 정보만 처리할 수 있다.
- 실행이 아닌 의사결정을 위해 진화했다. (예컨대, 의식을 하면 춤이 더 엉킨다)
- 진화적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만 알아차리거나 느낄 수 있다.
- 유전자 입장에서는 개체의 행동이 매우 다양해지므로 위험하다. (ex. 인간의 경우, 자살하거나 번식을 하지 않거나…)
그렇다면 동물에 의식이 존재하는지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 사람의 경우 – 말이나 행동을 평가하면 알 수 있다.
(→ 감금 증후군이나, 좀비 문제 등이 발생하겠지만.) - 동물의 경우 – 말을 할 수 없으므로, 행동에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
복잡한 계산과 행동이 반드시 의식과 같은 고도의 정신활동을 수반하는 것도 아니다.
가령, 소뇌나 소화기관에는 대뇌피질에 필적하는 신경망이 있지만 이들에는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본 논문에서 정의된 의식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감각 입력을 알아차리고, 외부/내부 환경을 통제하는 것”.
다시 말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행동의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
이에 따르면 의식의 행동적 증거는 의사결정의 유연성에 있다.
자동화되지 않은 풍부한 반응, 단순한 자극과 반응, 일차원적인 학습이 아닌
‘내적 동기로 인한 결정’이 의식의 존재 여부의 판단근거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저자는 또한 정서와 느낌(feeling)의 개념을 의식의 핵심 구성요소로 꼽고 있기도 하다.
한편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동물들은 크게 3개의 문(門)으로 나뉜다.
저자가 그랬듯 ‘자극에 대한 반응의 레파토어가 얼마나 넓은지’를 의식의 척도로 본다면
두족류와 절지류는 의식을 갖는다고 보기 힘들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문어와 같은 두족류는 기억, 학습, 모방 등 매우 복잡한 행동을 수행하지만
행동적으로 유연하거나 개인화되어 있지는 않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절지동물도 (ex. 개미, 벌 등 사회적 곤충) 개념을 배우고 의사결정을 하는 등
매우 복잡한 행동을 수행하지만, 두족류보다도 더 많은 것들이 이미 프로그래밍된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절지문/연체문이 척삭동물과 분리된 것은 5억 4천만년 전 캄브리아기 대폭발 때인데,
그렇다면 척추동물 중에도 의식이 없는 것이 있는가?
우선 최소한 포유류와 조류에는 의식이 존재하는 것 같다.
심지어 침팬지에게는 인간과 유사한 잠재의식적 시각자극 (subliminal visual stimuli)과 의식적 지각의 차이도 보인다.
새에게는 문화적 행동전달과 감정 개념이 있다.
거의 모든 포유류에게도 (특히 사회적 동물에는) 감정이 있으며,
이 감정을 관장하는 뇌 부위도 진화적으로 보존되어 왔다.
파충류의 경우는 애매한데, 기초적인 감정 반응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파충류도 의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양서류와 달리 파충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정적 반응으로 체온이 상승한다.
그보다 더 밑, 어류에는 고통을 느끼는 뇌 부위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 이에 대해서는 위키피디아에 반론이 게재되어 있다. 어류도 고통을 느낀다. 링크)
의식이 있다고 저자가 주장한 세 종류의 동물들, 파충류, 조류, 포유류에는 나머지 동물들과 구별되는 한 가지 생리학적 공통점이 있다.
바로 태아를 둘러싼 막, 양막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들을 양막류라 부른다.
그렇다면 저자의 말대로 왜 양막류에서 의식이 진화했을까?
양막류는 완전히 육지에 적응한 최초의 척삭동물로, 이 환경적 변화로 인한 적응 전략이 바로 의식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양막류에서부터 의식이 진화한 이유 5가지를 꼽고 있다.
- 물보다 지상의 생태계가 더 복잡하다.
- 환경적 조건 (마실 물의 접근성, 주변 온도 등)이 매우 유동적이다.
- 양막류는 대개 대형동물이고, 수명은 긴 반면 자손 수는 적고 양육이 필요해,
진화의 속도가 빠르지 않다.
따라서 유전자보다 개별 개체의 적응성이 환경에 적응하는 핵심 요인이었다. - 다른 문(門)에 비해 중추신경계가 발달되어 있었다.
- 폐가 있어 산소를 효율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 뇌의 핵심 기능은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의식이 있으면 통찰을 통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 ‘느낌’과 감정의 존재가 어떤 행동을 할지 판단할 때 유연성을 제공하는 유용한 전략으로 작용해서, 진화적으로 선호되었다.
예컨대, 느낌은 행동에 대한 선택지를 비교할 ‘단위’ 혹은 ‘화폐’로서 기능하고,
개체는 기쁨을 최대화하기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 느낌이 작동하려면 쾌/불쾌를 경험할 수 있어아 한다.
- 자각 (awareness)과 느낌은 초기 양막류부터 진화했다.
- 다른 문에 속한 동물들의 복잡한 행동들은 의식이 수렴진화가 해서가 아니라 다른 기작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