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었지만 이제야 살짝 체화할 것 같은 몇 가지 깨달음.

첫째, 연구자로서의 내 일상을 유지하는 어떠한 황금률 같은 루틴이나 규칙은 없다는 것. 

달려드는 괴한을 막는 것에 정해진 룰이 없듯, 나 역시 밀려드는 무력감, 회피 욕구, 안주하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고, 체면에 개의치 않고, 그 순간 손에 짚이는 모든 방법을 다 써서 저항해야 한다는 것. 

어느 시점에 잘 드는 무기도 맥락이 바뀌면 무디어진다. 

과감히 내던지고 다른 무기를 집어들어야 한다. 모든 건 요령이다.

둘째, 변화는 의식과 무의식에서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 

판단과 논리로 나의 의식을 설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무의식에 속하는 깊은 감정을 달래야 좀 더 확실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열심히 살아야지ㅡ라고 의식적으로 결심하고 나를 채찍질한다면, 무의식에서는 높은 확률로 난 왜 열심히 살지 않을까ㅡ라는 자기혐오가 생긴다. 

결심은 의식에서 곧 희미해지겠지만, 무의식에 남은 자기혐오감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무기력이나 폭식과 같은 백래쉬로 되돌아온다. 

소소한 성공의 경험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반대로, 아무리 심한 무기력에 빠졌더라도, 저항하려는 마음이 무의식에 있다면(지금까지 해 온 게 아깝고 억울해!), 역전의 불씨는 언제든 타오를 수 있다. 

(무의식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나는 무의식을 의식적 서술자의 논리 체계를 제외한 억압된 감정, 호르몬 밸런스, 내현기억, 짧게 스쳐가는 생각 등 여러 심리 요소의 복합체로 본다.)

셋째, 어떠한 조건에서도 인간이 하루 동안 느끼는 일상적 행/불행의 양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뇌의 호르몬 체계는 항상성을 따른다. 

삶의 에너지 랜드스케이프는 생각보다 평탄해서, local minimum의 깊이가 다들 별반 다르지가 않다.

즉, 어느 쪽으로 가든 그 나름대로 행복이 있다는 것. 

따라서 성공에 너무 연연할 필요도 없고, 행복을 좇기 위해 다른 진로나 삶의 방식에 눈을 기웃거릴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지금의 불행에 눈을 감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불행한 거라면, 벗어나는 것을 반드시 고려해 보아야 한다. (첫째 깨달음과 맞물림)

궁극적으로 내가 지향해야 할 목적함수는 행복의 양이 아니라 타고난 능력을 얼마나 잘 계발, 발휘하고 있는가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