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왔다는 신경외과 의사 이븐 알렉산더의 <나는 천국을 보았다(Proof of heaven)>을 읽고 있다.
임사체험은 무엇일까?
저자는 다른 임사체험자들과 달리 체험 도중에 자아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깊숙한 곳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임사체험의 이러한 비일관성이 그것이 환상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꿈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는 모두 꿈을 꾸므로 다른 사람에게 구태여 꿈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꿈이 정말 희귀한 현상이라면 어떨까. 꿈을 꾼 사람은 꿈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꿈이 무엇인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꿈은 경험자에게는 완벽하고 생생한 실제이고, 뇌가 특정 모드로 진입하였을 때 만들어지는 틀림없이 물리적인 신경 사건이다. 하지만 꿈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기존의 경험과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의 시뮬라크르이며, 일어난 적 없다는 점에서 환상이다. 꿈을 경험해본 적 없는 사람에겐 이것이 대단한 역설처럼 여겨지지 않을까?
임사체험도 꿈 혹은 환각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한다. 임사체험은 뇌의 특정한 영역 혹은 모드(특히 전두엽과 좌뇌)가 손상되고 나머지(우뇌?)는 정상 작동할 때 생기는 경험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어느 정도 일관성을 띤다. 이 책의 경우처럼 개인별/문화별로 다른 경험을 하는 사례가 있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그 사람의 기억, 그리고 손상 부위에 따라 다른 경험이 일어날 수 있다.
향정신성 약물로 인한 환각 속에서도 사람들은 깨달음과 영성을 경험한다. 다만 이때 사람들은 깨어 있기 때문에 실제 감각적 자극과 더불어 특정 모드가 더 향상된, 혹은 보충된 실재를 경험한다.
우리는 뇌의 필터가 허용하는 것만을 볼 수 있다. 우리의 뇌는, 특히 언어/논리를 관장하는 좌뇌는 합리성에 대한 감각과 개인 또는 자아라는 인식을 발생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더 높은 차원을 알고 경험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102p)
나도 여기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는 영성을 전혀 믿지 않지만, 나의 경험이 실재를 경험하는 유일한 방식일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내 뇌에 갇혀 있다고 말해야겠지. 뇌라는 필터에게 다른 어떤 모드들이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향정신성 약물로 인한 변화된 의식 상태에 대한 연구는 장려되어야 한다.
사후세계 vs 임사체험
잔소리
저자가 본문과 부록에서 임사체험을 설명하는 여러 과학적 가설을 반박하는데, 대부분 이런 식이다. 환각은 신피질이 있어야 경험할 수 있다. 자신은 신피질이 죽어 있었으므로 환각을 경험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의 경험은 환각이 아니라는 논리.
아니, 그런데 저자는 정상적으로 살아돌아왔지 않은가. 눈을 뜬 이후에도 한동안은 (의식적) 환각을 보고 횡설수설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신피질이 완전히 손상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탐지가 되지 않았을 뿐, 약한 활동은 얼마든지 존재했을 수 있다. 그랬으니 완전히 회복되었겠지.
서구 문화에서는 사후세계와 천국이 동치이기에 이 책이 “천국을 보았다”로 번역되었지만, 좀 더 종교-중성적인 표현이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런데 책 내용이 워낙 크리스찬 입맛에 딱 맞게 되어 있는지라…. 오히려 그냥 이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신비주의와 음모론을 믿지 않는다. 사후세계, 유체이탈, 염력, 투시 같은 초심리학parapsychology이 경계과학에 맴돌고 있는 것은 유물론에 빠진 학자들의 편협한 태도 때문이 아니라 근거가 모자라고 서로 상충하기 때문이다. 근거만 충분했다면, 다들 발뻗고 나서서 연구했겠지. 오죽하면 초심리학에 몇십년을 쏟아부은 수전 블랙모어가 50이 넘어서 이건 bullshit이라고 양심선언하고 업계에서 뛰쳐나왔을까. 의식에 대한 연구계의 관심은 장려되어야 하지만, 특정 종교관이 개입해서는 매우매우매우 곤란하다.